법화산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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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법화산은 용인시 서북부에 위치한 산으로, 수지구, 기흥구, 처인구에 걸쳐 있다. 법화경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향수산, 석성산 등과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는 향수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탄천의 발원지 중 하나이다. 법화산에는 아기장수와 용마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며, 고려 초에는 용구현으로 불리기도 했다. 법화산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등산 코스이며, 탄천문화제가 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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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산 (경기)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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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법화산 |
한자 표기 | 法華山 |
높이 | 385.2 |
위치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청덕동·언남동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
![]() | |
사진 설명 | 법화산에서 바라본 한성CC 골프장 |
기타 | |
위도 | 37.308604 |
경도 | 127.147779 |
2. 산의 위치
법화산은 법화경[1]에서 따온 이름으로 용인시 서북부, 북부지역에 위치한 산이다. 수지구 죽전동, 기흥구 마북동, 청덕동, 언남동과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등 3개 구에 걸쳐있다. 1861년(철종 12) 고산자 김정호가 편찬·간행하고 1864년(고종 1)에 재간한 대동여지도에는 향수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용인 지역에는 지명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지명지》에는 옛 상마곡 마을에 마운사(痲雲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중이 마의(痲衣)를 입고 다녔고, 이곳이 관할 면 소재지의 북쪽에 위치하여 마북(痲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항상 맑은 물이 계곡에서 흘러내려와 수청동(水淸洞)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법화산은 《법화경》(묘법연화경)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기록이 있다.([http://www.grandculture.net/main/main.asp 향토문화대전] 내용 참조)[2]
법화산의 굴곡진 산세는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서 문수산과 갈라진다. 탄천의 발원지 가운데 하나인 기흥구 마북동과 청덕동 (마북천) 지역은 예부터 물푸레나무가 많고 항상 맑고 푸른 물이 흘러내린다 하여 '청덕리(淸德里)', '물푸레골'이라 불렸다.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의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 부근에서 다른 물줄기 하나를 만들어 경안천으로 흐른다. 현재 구성동 청덕동의 88 CC,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레이크사이드 CC 등 골프장을 사이에 두고 향수산과 연결되고 있으며 마성터널을 사이에 두고 석성산쪽은 동백동, 법화산 쪽은 청덕동으로 나뉜다.
법화산은 주변의 형세가 타 지역보다 높아 여러 신하가 임금에게 조례를 올리는 군신봉조형(群臣奉朝形) 같다는 전설처럼 예로부터 명당보국(明堂保局)의 길지로 알려진 곳이다.[2] 경기도 용인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법화산은 수지구 단국대학교에서 나오는 내대지천이 탄천의 발원지가 된다. 용인 북부지역 기흥구 '마북천'과 '청덕천'에 흐르는 물도 탄천의 물길이 된다.
3. 역사와 유래
이 지역에는 떠내려온 산(浮山), 용바위, 홍수 전설, 호랑이와 도깨비 같은 구비전승 설화가 전해진다. 또한, 짐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인 거룻배가 있었다는 무등치 설화, 둥둥배, 둥둥바위, 조개 껍질이 붙어 있었다는 굴바위, 광교산에서 낚시를 했다는 민담, 배 매는 고리의 전설 등 용인과 수원 지역이 과거 강이나 바다였다고 하는 이야기가 토박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진다.[6]
탄천에는 동방삭 전설이 전해진다. 동방삭(기원전 154~93)은 한(漢) 무제(기원전 156~87)에게 등용된 정치가로, 익살과 해학으로 유명했다. 한국에서는 장수의 대명사인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수명이 30세였던 동방삭이 10에 한 획을 더 그어 1,000으로 바꾸어 삼천갑자를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저승사자가 성남 분당의 탄천(숯내)에서 숯을 빠는 꾀를 내었고, 동방삭이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말하였다가 신분이 탄로나 붙잡혔다는 탄천 이름에 관한 전설이다.[7] 용인시에서는 죽전 1, 2동이 공동 개최하는 탄천문화제가 매년 죽전체육공원과 탄천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8]
3. 1. 고대
고구려 장수왕 63년(475년), 장수왕은 3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백제의 아단성(아차산성으로 추정)[3][4]에서 개루왕을 사로잡아 참수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백제의 영토였던 용인 지역뿐만 아니라, 안성천 유역부터 아산만까지 영토를 넓혔다. 장수왕은 용인 지역을 현으로 승격시키면서 '말굽 모양의 성이 있다'는 뜻의 구성현(駒城縣)이라 칭하였다. 이것이 용인 지역 최초의 행정 지명인데, 백제에서는 이를 '까마귀가 슬퍼 죽었다'는 뜻의 '멸오(滅烏)'라고 기록하였다.
일설에는 고구려 원정군이 패주하는 백제군을 수없이 격파했을 때, 그 시체가 마치 까마귀 떼와 같았다고 하여 ‘멸오’라 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고구려가 용인 지역을 영토로 편입하면서 명칭을 '구성'이라 한 것은 '크다'는 의미의 '말아'를 한자로 의역한 것이다. ‘말아’ 또는 ‘마라’는 마루(宗)와 동의어로, ‘크다(大)’, ‘높다(高)’ (예: 산마루, 종가, 종손)는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구성(駒城)은 ‘큰 성’, ‘높은 성’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멸오’는 옛말로서 ‘크다’는 뜻의 말(馬)이나 구(駒)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지만, 이것은 현재의 크고 높은 성을 뜻하는 것으로 법화산과 보개산(석성산)이 있는 지역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용인 지방은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 안성천 등 크고 작은 하천이 모두 용인에서 발원하여 인접 시·군으로 흘러 나가는 지리적 특성을 보인다. 이는 용인 지방이 분지를 형성하면서 인접 시·군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멸오', '용구(龍駒)', '구성(駒城)'이 ‘높다’는 의미에서 표기된 지명이라면, 이미 삼국시대에 용인의 이러한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는 추론을 할 수 있다.[2][5]
3. 2. 고려와 조선
고려 초기에 구성현(駒城縣)은 용구현(龍駒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용인시에서 '용(龍)' 자가 들어가게 된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용인시 좌측에는 투구봉, 우측에는 칼봉이 있는데, 이 봉우리들은 투구와 칼처럼 생겼다. 이 사이의 넓은 터는 '장군대지형'으로 불리며,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옛날 남씨 문중에서 이곳에 묘를 썼는데, 얼마 후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아기는 사흘 만에 옆구리에 날개가 돋고 힘이 장사였다.
당시 당파 싸움이 치열하여, 남씨 문중은 아기장수가 화근이 될 것을 우려해 바위로 눌러 죽였다. 아기를 묻으려고 땅을 파보니 투구와 칼이 나왔다고 한다.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 액교산의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왔는데, 아기장수가 죽자 용마는 석성산을 향해 달려갔다. 고림리의 액교산에는 용마가 났다는 용마바위가 남아 있다.
이 지역에는 「고장군 묘소 전설」, 「아기장수와 용마바위」, 「유방리의 남씨네 아기장수」 등 비슷한 설화가 많다. 이러한 전설들은 훗날 조선 시대의 남이 장군 이야기로 이어진다. 《연려실기술》, 《청야만집》(靑野謾集), 《대동기문》(大東奇聞) 등에 남이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며, 구전설화도 전국에 퍼져 있다. 특히 《연려실기술》 중 《국조기사》(國朝記事)에 인용된 남이의 결혼 과정은 민간 전승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2]
4. 전해오는 이야기
법화산은 법화경[1]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용인시 서북부와 북부 지역에 걸쳐있다. 수지구 죽전동, 기흥구 마북동, 청덕동, 언남동,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등 3개 구에 걸쳐 있는데,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는 향수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용인지역에는 지명에 얽힌 전설이 많다. 《조선지명지》에 따르면, 옛날 상마곡 마을에 마의(痲衣)를 입은 중이 다니던 마운사(痲雲寺)라는 절이 있었고, 이곳이 관할 면소재지의 북쪽에 있어 마북(痲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한, 항상 맑은 물이 흘러내려 수청동(水淸洞)이라 불렸다는 전설도 있다.[2]
고구려 장수왕 63년(475년), 장수왕은 3만 대군으로 남쪽을 정벌하여 백제 개루왕을 죽이고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용인 지역을 현으로 승격시키고, 말굽 모양의 성이 있다는 뜻의 구성현(駒城縣)이라 불렀다. 백제는 이를 까마귀가 슬퍼 죽었다는 뜻의 ‘멸오(滅烏)’라고 기록했다.
용인 지방은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 안성천 등 여러 하천이 발원하여 인접 시·군으로 흘러 나가는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멸오', '용구(龍駒)', '구성(駒城)'이 모두 ‘높다’는 의미에서 표기된 지명이라면, 삼국시대부터 용인의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2][5]
이곳에는 떠내려온 산(浮山), 용바위, 홍수 전설, 호랑이와 도깨비 같은 구비전승 이야기와 짐과 사람을 실어나르는 작은 배인 거룻배가 있었다는 무등치 설화, 둥둥배, 둥둥바위, 조개 껍질이 붙어 있었다는 굴바위, 광교산에서 낚시를 하였다는 민담, 배 매는 고리의 전설 등이 전해지며, 용인 수원지역이 강이나 바다였다고 하는 토박이 주민들이 많다.[6]
용인시(龍仁市)에서 '용(龍)'자가 들어가게 된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용인시 좌측의 투구봉과 우측의 칼봉 사이 넓은 터는 '장군대지형의 땅'으로 여겨졌다. 옛날 남씨 문중에서 이곳에 묘를 썼는데, 얼마 후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아기는 사흘 만에 옆구리에 날개가 돋고 힘이 장사였으나, 남씨 문중은 화근이 될까 두려워 아기장수를 바위로 눌러 죽였다. 땅을 파보니 투구와 칼이 나왔다고 한다.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 액교산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었다고 한다. 용마는 아기장수가 죽자 성산(석성산)을 향해 달려갔다. 고림리 액교산에는 용마바위가 남아 있으며, 용마가 울부짖던 흔적이 뚜렷하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는 「고장군 묘소 전설」, 「아기장수와 용마바위」, 「유방리의 남씨네 아기장수」 등과 비슷하며, 훗날 남이 장군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설들로 인해 삼국시대의 구성현(駒城縣)이 고려 초 용구현(龍駒縣)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초기 명장 남이에 관한 인물 전설은 《연려실기술》, 《청야만집》(靑野謾集), 《대동기문》(大東奇聞)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구전설화도 전국에 퍼져 있다.
4. 1. 탄천과 동방삭 전설
탄천은 오래전부터 동방삭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동방삭(東方朔, 기원전 154~93)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기원전 156~87) 때 사람으로, 스스로를 천거하여 미관말직에 등용된 후 평생을 조정에 ‘은거’했던 익살과 해학의 정치가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장수(長壽)의 대명사인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알려져 있다.[7]원래 수명이 삼십(三十)이었던 동방삭은 십(十)에 한 획을 더 그어 천(千)으로 바꿔 삼천갑자를 살게 되었다. 이에 동방삭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는 성남 분당의 탄천(炭川, 숯내)에서 숯을 빠는 꾀를 냈다. 길을 지나던 동방삭이 “내 삼천갑자를 살지만 이런 기괴한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가 신분이 탄로나 붙잡히고 만다. 이것이 탄천 이름의 유래에 관한 또 다른 전설이다.[7]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용인시에서는 죽전 1, 2동이 공동 개최하는 탄천문화제가 해마다 죽전체육공원과 탄천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다.[8]
5. 문화와 행사
용인 지역에는 지명에 얽힌 전설이 많다. 법화산(法華山)은 《법화경》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2] 탄천에는 동방삭이 숯을 빠는 저승사자의 꾀에 넘어가 잡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7] 이 전설을 바탕으로 용인시 죽전 1, 2동에서는 매년 죽전체육공원과 탄천 일대에서 탄천문화제를 공동 개최한다.[8]
용인시(龍仁市)의 '용(龍)'자 유래와 관련된 설화도 있다. 장군대지형 땅에 묘를 썼더니 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가문의 화를 우려한 남씨 문중이 아기장수를 죽였다는 이야기다.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 액교산 용마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왔고, 아기장수가 죽자 석성산을 향해 달려갔다는 전설은 남이 장군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설들은 삼국시대 구성현(駒城縣)이 고려 초 용구현(龍駒縣)으로 바뀐 배경으로 여겨진다.
6. 등산 코스 정보
법화산에는 여러 등산 코스가 있어 다양한 난이도와 소요 시간으로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수지구 죽전야외음악당 우측 등산로는 법화산 산행의 주된 코스 중 하나이다.[9] 산행 중에는 연못, 잔디구장,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용인공원묘지' 등을 볼 수 있다.[9]
기흥구 구성동 중심에 위치한 법화산(해발 385.2m) 등산로는 탄천의 발원지 중 하나인 '마북천'이 흐르는 마북동과 물푸레골의 청덕동, '천주교용인공원묘지'가 있는 모현읍 오산리에 걸쳐 있다.[9] 능선 길은 빽빽한 소나무 숲길로 푹신하여 걷기에 편하다.[9]
구성동주민센터에서 출발하여 코오롱중앙연구소, 현대연구소를 거쳐 법화산 정상에 이르는 3.3km(왕복 3시간 40여 분 소요) 구간 등산로 코스에는 휴일마다 많은 인파가 몰린다.[9]
7. 주변 명소
법화산 기슭에는 여러 명소가 자리 잡고 있다. 기흥구 마북동에는 대한제국 말기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묘와 병자호란 때 3학사 중 한 명인 충렬공 오달제의 묘, 연안부부인 전씨 묘(延安府夫人田氏墓) 등이 있다.[9]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용인공원묘지가 있다.[9] 기흥구 언남동에는 용인 향교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삼일운동 당시 파고다 공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어대선 지사, 만주와 상해 등지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한 어영선 대장, 만주에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한 김혁 장군 등 다수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였다.[10]
참조
[1]
문서
법화경
[2]
뉴스
‘살만한 곳’ 용인
http://www.yongin21.[...]
굿모닝용인(용인시민신문)
2009-03-18
[3]
문서
[4]
뉴스
"왕의 목을 베어라!" 한성백제 최후의 날
http://news.nate.com[...]
오마이뉴스(네이트)
2003-07-24
[5]
뉴스
성남 윤상돈기자
https://news.naver.c[...]
네이버, 서울신문
2005-02-26
[6]
뉴스
구성면 마북리의 민담/구비전승/설화
https://web.archive.[...]
용인아이(용인지역신문)
1996-05-18
[7]
뉴스
동방삭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09-08-27
[8]
뉴스
용인 죽전서 탄천문화제
https://news.naver.c[...]
연합뉴스(네이버)
2008-10-10
[9]
뉴스
불타는 가을산행, 용인시 명산이 등산객을 부른다
https://news.naver.c[...]
뉴시스(네이버)
2008-10-20
[10]
뉴스
동방삭
https://web.archive.[...]
굿모닝용인(용인시민신문)
200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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